1호 --기다림의 시작

by 장민구 posted Jan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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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기다림이 아닐까? 아마존에서 주문한 물건이 배달되기를 기다리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히 오더를 했고 페이를 했고 예상 배달 날짜가 있으니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것은 … 쉽지 않다. 그런데, 언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올 지 전혀 모르고 기다리는 것은 … 어렵다. 더군다나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것일 때는 … 피가 마르기도 한다. 아이들의 대학 입시지원 결과를 기다린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준비끝에 잡 인터뷰를 보고 결과를 기다린다면? 몸에 이상이 있어 참다 참다 조직 검사를 한 후에 그 결과를 기다린다면? 

 

미국에 온 후 지금까지 가장 큰 기다림은 신학을 마치고 종교 비자를 신청한 후였다. 6년 반만에 신학 교육이 끝났다. 속성으로 2달의 ESL을 마친 후 간신히 그 신학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토플 점수를 받을 수 있을 때였다. 강의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로 쓰인 신학논문, 주석서, 참고서들을 읽고 이해하는 데 미국 학생들에 비해 두배 세배의 시간을 들여야 했다. 심지어 영어 성경을 읽는 것조차 원활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영어를 배우는 데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으로 무리하게 대학원에 지원을 했는데 운좋게 입학이 된 거였다. 

 

잘 못하는 영어로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것은 상당히 무모한 일이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생긴 두통이 증거다. 처음엔, 그 전에도 두통을 앓은 적이 있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나중에 너무 심해져서 그 원인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로 인한 두통이었다. 한국말이라고는 가족들과 밖에 할 일이 없는 미국 테네시의 시골 동네에서 살며, 충분하지 않은 영어로 대학원을 다니는 상황이다 보니, 언어의 스트레스 때문에 극심한 두통이 자주 왔던 것이다. 주말에라도 영어를 하지 않았으면 나았으련만, 미국 학생들 기준으로 내주는 읽기 과제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미국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도 피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나보다 영어가 부족한 집사람을 위해 바이블 클래스와 설교를 통역해 주어야 했으니 어찌 뇌가 쉴 틈이 있었으랴. 세월이 약이라고, 한 학기 두 학기가 지나면서 영어도 조금씩 좋아졌고, 정비례하듯이 두통도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그 “영어 두통”이 미국에서의 공부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6년 반 동안 두개의 신학 및 목회학 석사학위를 마쳤다. 비자를 스판서해주려고 기다리던 미국 교회에서 졸업하기 몇달 전에 전문직 비자를 신청했다. 종교비자를 스판서할 법적 요건을 갖추기 쉽지 않다면서, 미국인 변호사가 권유하는 대로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교회의 미니스터를 전문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거절 통지를 받으면서야 알게 되었다. 교회에 따라서는 “필”만 받아도 미니스터가 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급행료까지 포함해서 7천여 불을 작은 교회가 기꺼이 지불해 주었는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미국에 온 지 어언 7년 …, 우리 아이들을 보니, 큰애는 고등학교 1학년, 작은애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들의 교육 때문에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어둡고 긴 기다림의 터널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때맞추어 인턴쉽을 할 교회가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그 교회도 종교비자 스판서를 할 요건은 안 되었다. 

 

스판서해 줄 수 있고 할 의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야 했다. 한인 커뮤니티가 있을 법한 타운들에 있는 미국 교회들에 자기소개서와 레쥬메가 든 메일을 10여 개 보냈다. 한 달 두 달 …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스판서가 나타나지 않을 것에 대비해 진학을 하기 위해 다시 토플과 GRE 시험을 보아야 했다. 싫었다—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한국에서의 삶을 접고 미국에 와서 안 되는 영어로 골이 아프게 공부를 했건만, 청빙해 줄 교회가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다니…. 그러나, 현실은 아는 교회도 많지 않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미국에서 스판서를 할 수 있고 해 줄 의사가 있는 교회를, 그것도 한국인을 청빙할 미국 교회를 찾는 일은 눈을 가린 채 눈을 뜨고 피해다니는 친구들을 발자국 소리만 듣고  찾아다니는 술래잡기와 같았다. 

 

하지만, 조바심내지 않고 (그래 봐야 스트레스만 생기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 일단 우리가 살던 타운에 있는 미시시피 주립대학에서 제2외국어영어교육(TESL) 석사 학위 과정에 지원해 뒀다. 

 

우리 가족은 어둡고 긴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그 긴 기다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없이 못난 아빠와 엄마를 믿고 진득하게 흔들림없이 학업에 충실해 주었던 큰 아이 한웅이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작은 아이 한빛이는 어려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의젓하게 그 긴 터널을 따라와 주었다. 정말 긴 긴 터널이었는데 말이다. (다음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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