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호--고마운 사람들

by 장민구 posted Jan 20,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반추7.jpg

 

고마운 사람들

 

사람은 혼자 못산다. 관계를 통해서 산다. 물질적으로도 그렇지만,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영적인 관계가 교회이고 (요한일서1:3), 그 사람들이 세상에서 나누어야 하는 것이 형제, 이웃의 사랑이다 (요한복음13:34). 그 영적 교제 안에서의 형제와 이웃에 대한 사랑은 구원을 완성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성도들을 위한 영적인 힘이다 (빌립보서1:27). 나에게 주어진 긴 기다림과 견딤의 시간도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들이 없었다면 이겨내기 불가능했을 게다. 많은 분들 중 여기서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은 분들이 두엇 있다. 단지 그들의 선행만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을 통해 나를 성숙할 수 있게 인도해주신 주님의 역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온 이듬해 40대가 되면서 이빨에 문제가 생겼다. 왼쪽 위 어금니가 선천적으로 덧니를 갖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꾸 충치가 생겼다. 미국에 오면서 급하게 해결을 하느라고 아말감으로 떼웠었다. 그후 1년 정도 되었을 때, 어느 날 어금니까 뚝 부러지고 말았다. 아말감의 수은 성분은 이빨의 뿌리까지 삭게 만들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치과치료에 사용금지된 물질이다. 한 미국 형제가 테네시 아담스빌(Adamsville Tennessee)에 치과를 하고 있는 Dr. Deaton을 소개해 주었다. 문제는 집에서 거기까지 2시간 반이 걸린다는 것. 하지만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소통도 자신없고, 또 치과치료비가 겁나기도 해서 교회 형제인 디튼에게 가기로 했다.

 

임플란트를 해주었다. 실비 800불만 받았다. 그러면서도, 농담 섞인 말로, 평생 워런티해 주겠다고 했다. 그랬던 것이, 몇 일이 안 되어 다시 뚝 소리를 내며 뭔가 이상이 느껴졌다. 아말감의 수은이 임플란트를 심은 뼈까지도 삭게 해서 그렇단다. 어쩔 수 없이 그 이빨 양쪽 이빨에 걸어 브리지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좀 화가 났다. 물론 임플란트를 싸게 해 준 것은 고맙지만 어쨌든 다시 브리지를 하면 몇 번 더 이 먼거리를 와야 하고 뿐만 아니라 돈이 더 들 게 아닌가? 가난한 유학생인데 …. 그날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나오려는데, 항상 유쾌하게 농담을 하는 디튼이 사뭇 진지하게 사과를 했다. 자기가 처음부터 맞는 치료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턱뼈까지 깊이 삭았을 줄은 몰랐다면서, 모든 치료를 무료로 하겠다고 했다. 미안해서 저러나 보다 하고, 정말 진심은 아니었지만,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나도 예의상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진심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브라더 디튼의 '치과'지원은 지금까지 11년째 계속되어 오고 있다. 우리 가족의 치아에 관한 모든 관리며 치료를 하나님의 일을 하는 형제에 대한 예우라며 무료로 해준다. 심지어 내 치아 교정까지도 무료로 해 주었다. 사실은 다음 주 화요일에 우리 가족의 정기 체크업이 있는 날이다. 아틀란타로 이사 온 뒤 6시간 걸리는 거리지만, 디튼 형제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1박2일로 그곳에 간다. 이번이 아틀란타에서 하는 두번째 치과치료 여행이다. 

 

디튼 형제가 자신의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지미 윙(Jimmy Wing)은 정말 절실할 때 돈으로 도와 주신 분이다. 2011년에 짐(Jim)이라는 형제가,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는 자신이 없으니 만나보겠느냐고 했다. 짐이 알려준 시간에 어느 웬디스에 나갔다. 얼마 후 350파운드 정도 나가는 엄청난 몸집의 괴퍅하게 생긴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들어왔다. 지미였다. 남부사투리가 심해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자신이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을 장황하게 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내가 준비한 내용으로 공부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당시는 재정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때였다. 두번째 학위가 2년반 정도 남아있을 때였는데, 한달에 1500불정도가 부족했다. 기도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학생비자로는 나는 물론 아내조차도 어떤 일도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지미를 만난 것이다. 그 다음 주에 그가 나가고 있던 작은 교회 건물에서 만나 그의 질문들에 대답을 해주기도 하고 그의 얘기를 들어 주기도 했다. 두 가지의 암 수술을 여러번 받고 키모 치료를 오래 받았으며, 여전히 사당히 많은 약물을 복용하고 있어 정상적인 사람의 심리상태와 사당한 차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던 지미와의 성경공부는 그리 쉽지 않았다. 짐이 자신없어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처음 만난 날 이야기가 끝나갈 물렵 감상에 깊이 젖어 자기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처치 어브 크라이스트의 독실한 멤버였단다. 알콜 중독에 빠진 남편이 떠난 후에 혼자서 지미를 비롯한 자녀들을 키웠다고 한다. 돌아가실 때는 재산을 어느 정도 형성하신 후였다. 정말 우연히 혼자서 임종을 하게 된 지미에게 어머니는 단 한 가지 유언을 남기셨단다. 자신이 남긴 재산의 일부를 꼭 성경을 성경대로 가르치는 형제를 후원하는 데 써달라는 것이었단다. 그때까지 후원할 만한 형제를 만나지 못해 한번도 그 유언을 실행하지 못해 돌아가신 어머니께 미안했었단다. 그러면서, 정말 자기와 같은 사람과 앉아서 성경을 같이 공부해 주는 나와 같은 사람을 지원해 주는 것을 어머니도 기뻐하실 거라며 한달에 5백불씩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진심은 아니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지미는 신학석사를 졸업하기까지 약 2년 반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내게 첵을 주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나머지 1000불도 해결되었다). 십수년 전에 돌아가신 지미의 어머니의 마지막 유일한 유언을 통해서 그 일이 이루어졌음을 생각하면 경이롭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미는 내가 아틀란타로 이사오기 한 1년 전까지 내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말하곤 했었다. 

 

디튼과 지미는 같은 처치 어브 크라이스트의 멤버들이었으니 그나마 이해가 간다. 그런데, 김중만 선생님은 교회도 다르고 심지어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던 분인데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다 하나님의 이름 덕분이었다. 

 

2009년에 미시시피로 이사를 갔을 때 한웅이가 5학년 한빛이가 2학년이었다. 한참 뛰어 놀아야 할 나인데 안타깝게도 마당도 없는 조그만 아파트에 살았다. 물론 돈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 아파트도 200불을 할인받아 살았다. 렌트 계약을 하는 날, 메니저가 850불짜리를 이유없이 650불에 살게 해주었다 (나중에 중도에 이사를 할 때에도 아무런 패널티 없이 이사를 하도록 해 주기도 했다). 10개월 정도 살았던 2010년 여름에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한국분이었는데, 자기가 살던 집이 비워지는데 한국인인 집주인이 우리 가족을 지명하면서 그 집에서 살겠느냐고 물어봐 달라고 했단다. 전화한 사람도 집주인도 모르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집구경이라도 해보자 하고 갔는데, 좋은 단지에 있는 방 세개 화장실 두개짜리 꿈같은 하우스였다. 특히 앞 뒤 야드는 넓고 깨끗했고, 작지만 집사람이 꿈꾸던 텃밭도 있었다. 하지만 렌트비가 못해도 1300불은 하는 집이었으니 우리 형편에는 가당치도 않았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고맙지만 형편이 안 되어서 못산다는 말을 정중하게 전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당시 살고 있던 분을 통해서 말씀하시길, “신학을 하시는 분이니 우리가 도와드리고 싶다”며 월800불이면 살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번에도 정말 진심은 아니지만,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집주인이신 김중만 선생님은, 거기서 신학을 마치시고 잡을 잡아 떠날 때까지 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그 집에서 신학을 마치고 또 종교비자 승인을 기다리는 3년을  합해 모두 만 6년을 살았다. 한웅이가 11학년 그리고 한빛이가 8학년을 마칠 때까지였다. 그 집은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산 집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사업상 2-3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었기 때문이다. 김선생님은 안식교인이신데 미국에 여러 안식교회를 개척하신 독실하신 분이셨다. 진정으로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모범적인 분이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주면에 많은 좋은 분들을 통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이 외에도 자신에게 배정된 어느 교회의 지원을 선뜻 내게 돌려준 김강석 형제나, 집사람의 한두 시간 봉사에 대한 보답으로 한달에 800불씩 교회를 통해 지원해 주신 상기 어머니, 아직도 누구였는지도 모르지만 수년 동안 우리를 재정적으로 도우신 마틴 교회의 몇몇 성도들, 그리고 이제는 한웅이에게 다달이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미스 앤(Ann) .... 장학금으로 공부를 가능하게 해 준 마틴 교회, 뉴욕 교회, 옥스포드 교회, 꾸준히 생활비를 보조해 준 갈보리힐 교회 및 잭슨 그로브 교회, 그리고 지금의 체스트넛 드라이브 교회 등은 물론이고, 천불 이천불씩 장학금을 지원해 주신 독지가들, 어려울 때 잊지 않고 기도해주신 분들 등등 ... 하나님의 이름으로 형제와 자매라고 하는 고맙고 좋은 분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 가족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선한 종들을 통해서 미천한 우리 가정을 양육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는 생각할 수록 신비롭고 감사할 뿐이다. (계속)  

 

 

금주의 설교 보기/듣기: 하나님의 끝 (야고보서 5장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