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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4 15:09

9호--첫 열매 한웅이

조회 수 65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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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추9.jpg

 

큰 아들 한웅이는 우리 부부의 인생의 증거이자 첫 열매다. 우리 부부의 21년의 삶 중에 20년을 함께 한 첫 아들. 우리의 기나긴 기다림의 구비구비에는 언제나 한웅이가 함께 있었다. 기쁨과 아픔을 같이 했기에 한웅이라는 이름만 생각해도 가슴이 저릿하다. 그러나, 한웅이는 그 아픔을 딛고 우뚝 일어선 우리의 자랑이자 첫 열매이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부부에게 한웅이는 기쁜 선물로 찾아왔다 (사진 맨 오른쪽, 2005년 한웅이 1학년 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2-3일 후에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전북 전주 장모님 곁에 집사람을 남겨둔 채 서울 신림9동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3년 안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딱 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했다. 그 덕분에 공대를 졸업했지만, 법대나 문리대를 졸업하고 당시에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서울대 고등학교 동기들보다 1차 시험에 먼저 합격했다. 첫번째는 1년 반 만에 그리고 두번째는 그 다음 해에.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그 둘 다 채점오류로 인해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불합격 취소 및 합격통지를 받은 것은 사업을 시작한 지 약 2년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동창인 부모님들의 소개로 결혼 2년 전에 처음 만나고 두어 번 더 만난 것밖에 없던 상태에서 결혼한 터라 약간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신혼여행에서부터 집사람과 나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결혼 초에도 우리는 데이트하는 남녀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떨어져 사는 것이 안타까웠다. 3-4 주에 한 번씩 집사람이 서울로 올라오던지 내가 처가로 내려가던지 했다. 그러던 결혼 3개월 정도 후 어느 날 한웅이의 영혼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한웅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고생했다. 아빠가 곁에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웅이를 낳기 직전에 집사람은 어미새가 알 낳을 둥지를 만들 듯 살 방을 준비하다가 무리를 해서 그만 조산을 할 뻔 했다. 병원에서 늦추었지만 그래도 2주 빨리 나왔다. 안타깝게도 한웅이가 세상에 첫 얼굴을 내미는 그 순간에 나는 어둠 속을 달려가는 심야 고속버스 안에 있었다. 한달에 한두 번 처가집에 내려가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떠날 때 한 번도 한웅이가 울거나 떼쓰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엄마의 등에 업혀 물끄러미 바라보며 혹은 웃으며 나를 보냈었다. 그러다, 내가 택시를 타고 떠나고 나서야 울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한웅이는 어려서부터 뭔가 달랐다. 태어나서도 18개월 경에 수술을 해야했다. 오랜 감기가 폐렴으로 그리고 폐렴이 결핵으로 발전했단다. 수술을 한 것은 말못하는 애기가 혼자서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낸 후 그 노폐물이 사타구니에 남겨놓은 혹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린 것이 혼자서 그 고통을 다 지낸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도 한웅이는 왠만해서는 울지도 두려워하지도 감정의 기복을 겪지도 않는다. 강한 친구다. 

 

한웅이는 정의로운 아이로 자랐다. 잘못된 것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아이다. 경기도 수지에 살 때 상당히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살았었다. 그러다 보니 치맛바람이 장난이 아닌 학교에서 한웅이는 초등학교 2학년을 보내야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주연급 남자 영화배우 외아들이 한웅이와 같은 반이기도 했다. 어느날 집사람이 한웅이가 고민이 많다고 말해 주었다. 한웅이 말을 들어보았다. 나이 많은 담임선생이 시험을 봐서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피자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한웅이가 듣기에, 욕과 같은 표현을 했단다. 너무 마음 아파했다. 선생님이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니고 친근감을 표현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기 위해 그런 거라고 이해를 시키려했지만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한웅이는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싶어했다. 어쩔 수 없이, 예의를 갖추어서 말씀을 드리라고 했다. 한웅이는 ‘선생님의 마음은 알겠지만 욕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는 요지로 담임에게 말씀을 드렸단다. 단지내 학부모들 사이에 삽시간에 소문이 났다. 시몬이 엄마라는 반 어머니 대표가 집사람에게 친절하게 했었는데 한웅이의 행동에 칭찬과 함께 심각한 조언을 하더란다—“한웅이 학교 잘 다니게 하고 싶으면 담임 선생에게 사과하고 앞으로는 절대로 그러지 못하게 하라”고. 우리가 곧 미국으로 이사를 와서 별 문제는 없었지만, 그게 한국의 ‘잘 나가는’ 초등학교의 현실이란다.     

   

미국에 온 해 한웅이는 9살이었고, 옥스포드 미시시피로 이사를 했을 때는 5학년 때였다. 옥스포드에서 한웅이는 이전에 살던 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꼈던 모양이다. 흑인과 백인 간의 문제다. 학교에서 배우는 미국 역사와 합해져서 한웅의 관심을 상당히 끌었던 것 같다. 한웅이는 흑백 각 인종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각자가 해결해나가는 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흑인은 자신들의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는 이슈들을 능동적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백인 중심의 미국 시스템에 불만만을 토로하고, 백인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 확대하기 위해 피상적일 뿐 실질적인 문제해결책을 실행할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확하게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제의식이 한웅이에게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고2 여름방학에 한웅이와 집중적인 성경공부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당연히 대학진학에 대해서도. 그 전에는 한 번도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한웅이는 놀랍게도 성경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몇 일 뒤에 다시 얘기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성경을 전공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에 대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지 나아가서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해 경험을 섞어 말해 주었다. 그러나, 한웅이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직 2학년이었으니 변경의 여지를 남겨두고 일단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3학년이 되어서도 그리고 대학 지원을 할 때도 한웅이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체화되어 갔다. 한웅이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 이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마음에 불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게 한웅이의 진로에 대한 계획은 일단 정해졌다. 

 

한웅이는 교회가 인종적, 사회적, 및 문화적 이슈를 인식하고, 각 인종들에게 성경과 신앙을 통해 솔류션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웅이는 성경해석학의 기초로서 언어학 전공으로 대학을 지원했다. 시니어때 부득이하게 옥스포드에서 아틀란타로 전학을 해야했지만 한웅이의 고등학교 전학년 성적은 미국 전국 0.5%내였다. ACT는 0.2%였다. 한웅이와 동문수학한 친구들 중에 한웅이보다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내로라 하는 학교들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웅이는 그런 학교들에 입학허가를 받지 못했다. 영주권이 없어 정부 그랜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랜트 없이 전액 아카데믹 장학금을 주는 학교는 없었다. 나는 한웅이의 학비를 댈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결국 한웅이는 한 해 쉬면서 다른 기회를 찾아 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연락한 내가 첫 학위를 받은 학교에서 한웅이에게 상당한 장학금을 주겠다는 오퍼를 해왔다. 우여곡절 끝에 그 대학에 성경전공으로 가게 되었다. 테네시에 있는 프리드하드만이라는 리버럴 아트 대학이다. 지난 겨울방학에 집에 오던 날 한웅이에게 그 학교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지만 지내보니 어떠냐고 물었다. 한웅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학교에 오길 잘 한 것 같아요.” 결국 한웅이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했던 “목사”가 되는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다.  

 

대학을 지원하기 전에 성경해석학을 전공하겠다는 한웅이를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부모는 자식이 좋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추구해 나갈 수 있도록 용기와 힘과 환경을 조성해 주는 역할에서 만족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이상 넘어서는 것은 자식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해를 끼치는 것에 불과하다. 집사람은 그런 나의 태도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과감하게 두어 번 한웅이에게 다른 것을 전공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했지만, 한웅이는 엄마나, 설사 그게 아빠였다 하더라도, 누구의 몇 마디 말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바꿀 아이가 아니었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만 결정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제 우리는 한나님께서 한웅이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다. 한웅이와 같이 뛰어난 고등학교 및 테스트 성적을 거둔 학생이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어떤 옵션도 없이 외통수로 테네시 시골의 작은 크리스챤 대학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은 두어 세대 즉 60-90년이 걸리는 것 같다. 물론 가짜 복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모으는 세상적인 가짜 교회들은 2-3년에도 뭔가 나타낼 수도 있겠지만, 주님의 사도들이 세우신 그 교회가 역사 속에 자리잡기까지 3백 여년이 걸린 것을 보면 100년도 그리 긴 기간은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한웅이는 우리가 뿌린 복음의 씨앗의 첫열매이자, 우리의 뒤를 이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릴 하나님의 일꾼이다. 나아가서 한웅이는 우리가 열매 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금주의 설교: 우리의 할일--기도 (야고보서 5:1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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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17 2018.02.05 15:41
    제 인생에 처음으로 댓글 이란 걸 써 봅니다
    왠지모르지만...
    ㅎㅎㅎ
    오늘은 한 마디 “ 꼬 ~옥 “ 쓰고 싶습니다
    목사님 화이팅 !!!
    “ 주님 께서 꼬옥 목사님의 기도를 이루십니다 “
    그리하여
    목사님 “ 반추” 의 마지막 구절은
    “ 주님께서 하셨 습니다”
    라고 믿습니다
  • 장민구 2018.02.05 23:0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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