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반추5.jpg

 

본래는 지금의 교회가 아니라 갈보리 힐 교회에서 일을 할 줄 알았었다. 그 교회에서 신청한 H비자가 거절되지 않았거나, 그 교회가 501C3인증을 IRS로부터 조금만 더 일찍 발급받았더라면 그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게다. 지금의 교회가 제출할 종교비자 신청서에 증빙자료들을 준비해서 보내기 직전에 나는 갈보리 힐 교회 Larry장로와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만일 이 교회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이 서류를 보내지 않겠다”고. 아무리 내 입장이 다급하지만, 그 교회에 먼저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래리는 그럴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최선을 다했으나 안 되었으니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지 보자.” 그렇게 미팅을 마치려는데, “그런데” 하며 래리가 말했다, “501C3가 어제 발급되었다.” 래리가 맞았던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나와 우리 가족을 아틀란타로 옮기고자 하셨던 것 같다. 불과 한달만 일찍 그 서류가 나왔어도 얘기는 많이 달라졌을 텐데 그 전날에서야 나온 걸 보면 말이다. 갈보리 힐 교회와 스폰서 문제는 그렇게 정리되었지만 그후로도 이곳으로 이사올 때까지 총6년 동안의 그 교회와의 인연은 우리 가족의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옥스포드 미시시피 동쪽 외곽 지역 한 구석에 세련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 교회 건물이 있다. 이 교회는 내가 합류하기 6년 정도 전에 그 도시에 있는 두어 가정이 시작한 교회다. 그 중 한 가정이 래리의 가정이었다. 그 후 2년 쯤 후에 스티브가 프리쳐로 합류하면서 현재의 모양의 교회가 되었다.얼마 뒤 래리와 스티브가 장로로 임명되어 교회의 수적 영적 성장을 이끌었다. 

 

내가 그 교회를 만난 과정은 좀 희안(uncanny)하다. 마틴 테네시에 살면서 첫번째 학위를 한 학기 남겨놓고 나는 미국 처치 어브 크라이스트의 또 다른 신학대학을 다녀서 균형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근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고, 생각하면 실행에 옮기는 성격인지라 그렇게 했다. 새로운 신학대학원은 멤피스 테네시에 있었다. 멤피스에도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으므로 거기서 한인 사역을 하며 학교를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학교에서 한시간 20분 가량 떨어진 옥스포드로 살 곳을 정했다. 미시시피 주립대학이 있어 유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옥스포드로 이사간 날은 090909 즉, 2009년 9월 9일이었다. 그해 12월에 첫 학위를 마치고도 트랜스퍼 일정에 문제가 생겨서 그 다음 봄학기까지 2시간 20분씩을 운전해서 이전의 대학원을 다녀야 했다. 

 

옥스포드로 이사를 했을 때 마틴 교회의 실비아라는 자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옥스포드에 래리라는 자기 친척이 있으니 꼭 만나보라고 했다. 학교 다니랴 새로운 곳에 적응하랴 바빠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옥스포드에서는 1970년대부터 한국인 미니스트리를 지원해오던 옥스포드 처치 어브 크라이스트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스레 그 교회에 합류했다. 오랫동안 한국인 미니스터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내가 한인 유학생 미니스트리를 담담하게 되었다. 그 교회는 나를 미니스터로 인정해 주고 장학금 지원도 하고 한 달에 한번 설교도 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회의 형제인 짐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다른 교회의 한 형제와 만나서 성경공부를 한다고 했다. 마침 수요일에는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어서 영어연습도 하고 성경도 좀 더 공부할 겸 같이 하기로 했다. 옥스포드로 이사간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래리는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는 장신이었다. 농구선수로 아틀란타 머서 대학을 장학생으로 다니고, 내쉬빌에 있는 벤더빌트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세계에서 이름난 미시시피 주립대학의 생약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보수적인 테네시 시골의 프리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성경을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혼자서 성경공부를 무지무지 열심히 하는 ‘성경전문가’였다. 첫 수요일 점심 성경공부를 위해 짐의 오피스에 가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실비아가 꼭 만나보라고 편지까지 했던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래리도 실비아로부터 나에 대해 듣고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단다 (미국 형제들의 배려는 참 아름답다. 이사와서 안정되는 데 6개월 정도는 걸리니 그 후에 연락이 오겠지 … 그 후에도 안 오면 자기가 찾아 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단다). 그렇게 나보다 15살 정도 많지만 래리는 나의 둘도 없는 믿음의 형제가 되었고, 둘도 없는 영혼의 친구가 되었다.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을 때 그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많이 배웠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맙다.” 거기에 대해 그가 한 말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너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너로부터 많이 배웠다. 고맙다.”  

 

그렇게 래리를 만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처음 그가 장로로 있는 갈보리 힐 교회에 초대를 받았다. 우리 가족들은 65명 정도 되는 작은 그 교회가 정말 맘에 들었다. 300명이 모여서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옥스포드 교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래서 그 해 10월 경에 한인 유학생 미니스트리를 그만 두고 그 교회로 옮겼다. 옮긴 후 2-3주 정도 지나 다른 장로인 스티브와 점심을 같이 했는데, 스티브가 한 말은 지금도 내 가슴을 뜨겁게 ㅎ한다: “민구, 우리는 너와 평생을 같이 하고 싶다. 너만 원한다면 ….” 그와 나는 거의 매주 한 번 만나 주로 치킨으로 점심을 같이 했다 (서던 프리쳐는 치킨을 많이 먹는다는 서던 농담이 있다). 법적으로 고용된 것은 아니지만 그 교회에서 파트타임 프리쳐로 일을 했다. 같은 프리처로서 우리는 설교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와 나누었고, 그는 그의 25년 경험에서 배운 것을 나와 나누어 주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동역이었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 진다. 

 

그렇게 인연이 된 갈보리 힐 교회는 우리의 인생 이야기에서 한 챕터를 차지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만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즉, 현재의 교회에서 비자를 신청한 후 비자를 기다리는 2년 반동안도 변함없이 그 교회는 우리 가족을 신실하게 후원해 주었고, 그 교회의 멤버들은 우리 가족의 친형제와 친자매와 같았다. Ms. Annie, Roy and Susie, Ronny and Kathy, Steve and Gay, Larry and Pat, Terry and Wanda ….  

 

하나님은 우리 가족이 7년 동안 잠시 거쳐 지나갈 옥스포드에도 미리 천사들을 준비해 두시고 또 내가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들을 예비해 두셨던 것 같다. 정말 하나님의 인도는 mysterious하다. (다음주 계속)

 

반추5.pdf 다운로드받기

 

금주의 설교: "끝까지 참으라" 야고보서 5장 7-8절

설교듣기

 

설교보기

 

 

 

   
?

  1. 11호--아내, 더 약한 그릇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사모’(목회자의 아내)는 직분은 아니지만 그 어떤 다른 직분보다도 더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고. 맞는 말인 것 같다. 목회자와의 관계 때문에 목회자의 아내는 목회자가 감당하는 것을 고스란히 같이 감...
    Date2018.02.18 By장민구 Views46
    Read More
  2. 10호--하나님의 뜻 vs 내 바램

    드라마는 인생의 선생이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몰입한 시청자들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야기의 전체를 보는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드라마 속의 캐릭터들은 각각이 처한 상황에 맞게 살기 때문이다. 어려서 잃어버린 자식을 20여 년 동안 애타게...
    Date2018.02.10 By장민구 Views56
    Read More
  3. 9호--첫 열매 한웅이

    큰 아들 한웅이는 우리 부부의 인생의 증거이자 첫 열매다. 우리 부부의 21년의 삶 중에 20년을 함께 한 첫 아들. 우리의 기나긴 기다림의 구비구비에는 언제나 한웅이가 함께 있었다. 기쁨과 아픔을 같이 했기에 한웅이라는 이름만 생각해도 가슴이 저릿하다...
    Date2018.02.04 By장민구 Views65
    Read More
  4. 8호--올미스

    하나님의 길은 다 헤아릴 지혜가 없다 (로마서11:33b).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의 인생에는, 당시에는 왜 그 길을 가야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데 지나서 뒤돌아 보면 하나님의 세심한 인도였음을 보고 놀라고 감사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이렇게 보면, ...
    Date2018.01.29 By장민구 Views47
    Read More
  5. 7호--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사람은 혼자 못산다. 관계를 통해서 산다. 물질적으로도 그렇지만,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영적인 관계가 교회이고 (요한일서1:3), 그 사람들이 세상에서 나누어야 하는 것이 형제, 이웃의 사랑이다 (요한복음13:...
    Date2018.01.20 By장민구 Views62
    Read More
  6. 6호--첫만남: We will take care of you anyway!

    스판서 교회와 처음 만남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 시작인 그 만남을 사탄이 방해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먼저 변호사를 선임해야 했다. 미국 교회는 한 번도 외국인을 고용해 보지 않았기에 비자가 필요하다는 것 이상 더 자세한 것을...
    Date2018.01.14 By장민구 Views63
    Read More
  7. 5호--Calvary Hill church of Christ

    본래는 지금의 교회가 아니라 갈보리 힐 교회에서 일을 할 줄 알았었다. 그 교회에서 신청한 H비자가 거절되지 않았거나, 그 교회가 501C3인증을 IRS로부터 조금만 더 일찍 발급받았더라면 그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게다. 지금의 교회가 제출할 종교비자...
    Date2018.01.07 By장민구 Views56
    Read More
  8. 4호 --예비하시는 하나님

    이 쯤이, 그 교회가 어떻게 나를 스판서하게 되었는가를 얘기할 순서인 것 같다. 이 일은 생각할 수록 은혜롭다. 왜냐하면 이 일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예비의 역사를 볼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그의 진리의 교회를 통해서 이루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
    Date2018.01.01 By장민구 Views50
    Read More
  9. 3호 --가만히 있으라

    미국에 온 뒤 빈번히 나를 괴롭히는 상상이 있었다. 부모를 잃은 한웅이와 한빛이가 보인다. 한빛이는 아직 유치원생 정도고 한웅이는 초등학교 2-3학년 쯤이다. 한웅이가 한빛이를 데리고 다니며 돌본다. 한웅이는 어른스럽게 상황을 이겨나가고 얌전한 한빛...
    Date2018.01.01 By장민구 Views12
    Read More
  10. 2호 --우연, 필연의 한 조각

    하나님에게 우연은 없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많다. 먼 훗날 뒤를 돌아보면 그 우연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어 냈음을 보게 된다. 신기하여 순간 화들짝 놀란다. 단 한가지도 우연이 아니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를 빚어 ...
    Date2018.01.01 By장민구 Views16
    Read More
  11. 1호 --기다림의 시작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기다림이 아닐까? 아마존에서 주문한 물건이 배달되기를 기다리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히 오더를 했고 페이를 했고 예상 배달 날짜가 있으니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것은 … 쉽지 않다....
    Date2018.01.01 By장민구 Views2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