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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00:06

12호--Don't be up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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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추12.jpg

 

정이라는 우리 말에 해당하는 개념의 영어 단어가 없듯이 영어의 upset에 해당하는 우리 말 단어도 없는 것같다. 화난 상태, 또는 예민한 상태 등을 가지고 비슷하게 설명을 할 수 있어도 ‘아하’ 하게 하는 그런 딱 맞는 단어를 아직 생각해 내지 못했다. 우리 말에 적확한 단어가 없지만, upset이 정말 잘 설명해 주는 사람의 상태가 있는 것 같다. 이루어 질 지 이루어 지지 않을 지 확실하지 않은 채로 무언가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을 기다리는 사람의 상태가 바로 upset된 상태가 아닐까 한다.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Fences>를 보았다. 주인공 Tray는 53세 된 흑인 가장으로서 젊은 시절 야구 선수의 꿈이 좌절된 후 오직 몸으로 일주일 벌어 일주일 사는 가난한 사람이다. 쓰레기 청소차를 따라다니며 쓰레기를 차에 싣는 일을 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퇴근해서 뒷뜰에서 같이 일하는 브루노와 함께 값싼 위스키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그러나, 그는 항상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듯이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특히 그 주말에는 더 그랬다. 다음 월요일에 커미셔너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해고되면 그의 아내와 고등학생 아들은 당장 먹을 것이 없게 된다. 72달러 정도의 주급을 받아서 다음 한 주를 살기 때문이다. 

 

큰 아들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Tray에게 큰 아들은 철없는 이상주의 딴따라에 불과하다. 작은 아들도 풋볼의 꿈을 꾸지 못하게 한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실패할 수도 있는 그런 것에 인생을 걸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느니 당장에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끝내 싸인을 해주지 않아 그 아들은 풋볼을 그만두게 되고 그런 아버지와의 갈등이 격화되어 결국 집을 나가 군대에 가서 그의 장래식 날에 돌아온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심판의 때가 다가온다고 말하는 미친 사람이 하나 나오는데 그는 Tray를 볼 때마다 자기에게 화가 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Tray는 언제나 부인하지만, 관객은 분명히 그가 그 미친 친구에게 화가 나 있거나 적어도 언제든 화를 낼 수 있는 심리적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도 그렇게 미칠 수 있음을 직감한 탓이었던 것 같다. 

 

그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한다. 그의 말에서 반복적으로 들리는 단어가 있는데 responsibility다. 그는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며 사는 사람이다. 그 집에서 혼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가 온 가족을 책임지고 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그는 책임감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항상 최선을 다해서 가족들을 부양한다. 심지어 실수로 밖에서 낳게 된 막내딸에 대해서 까지도 그 부인 Rose의 무너지는 가슴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피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 책임감으로 그가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음을 보여준 후에 훌쩍 수년이 지나 그의 장례식 날을 마지막 설정으로 끝이 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Tray는 미국에 온 후 지금까지의 바로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가장의 책임이 무거운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이민의 삶에서, 경제적으로는 물론, 비자 등 신분문제에 있어서까지 가정의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책임은 그 무게가 더욱 크다. 더우기, 정해진 수입이 없이 10년 가까이 공부를 하는 경우에는 아마 더 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민의 삶이 깊어갈수록, 어느 것 하나도 확실하게 장담할 수 없는 그 현실을 알게 되는데, 그렇게 그 현실을 알게 될 수록 그 책임감이 주는 무게와 실패가능성에 대한 염려가 주는 긴장감은 커진다.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돌이켜 보면, 나는 항상 upset되어 있었다, 영화 속 Tray처럼.

 

신학을 마치고 첫 비자 신청이 실패한 후에는 더욱 더 긴장감이 컸다. 신학을 마쳤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미 선택가능한 옵션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적이 있듯이, 그들이 스스로 하지도 않은 결정 때문에 인생이 힘들어지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 보니, 종교비자를 신청해 두고 아무 소식이 없자 아이들 때문에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특히 대학 입시가 다가오는 한웅이를 볼 때마다 가슴을 쓰러내려야만 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건지, 아니면 알고도 내색을 하지 않았던 건지 한웅이는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듯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한웅이 보다 믿음이 약했던 것 같다. 

 

Upset되어 있는 사람은 마치 독이 오른 뱀이나 새끼를 밴 암캐와 같다. 자극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 언제라도 터질 것만 같은 상태다. 나도 그랬다. 가엾은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화를 내지 않았지만, 화가 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써 참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느꼈을 것이다. 만만한 것은 아내였다. 나와 성격은 물론이고 관점이 많이 다른 아내가 내 생각대로 하지 않을 때 화를 냈다. 그럴 때면 아내는 이내 미소가 사라지고 말이 없어졌다. 내 말에 이렇다 저렇다고도 안 하지만, 미안하다 그러지 않겠다는 말도 없다. 결혼 초기에는 아내가 그러면 더 화가 났었는데, 화난 나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그런 때에 더 이상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보이지 않게 씩씩거리만 했다. 아내도 나만큼 upset된 상태였을 터이니 화를 풀어줄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부부는 이런 경우에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무리 서로 화가 나 있고 서로를 보기 힘든 상황에도 침대를 따로 쓰지 않는다. 서로 등을 돌리고 잘 지언정 침대는 같이 쓴다. 어떤 때는 2-3일이 지나도록 그렇게 등을 돌리고 잔 적도 있다. 그러다 보면, 누구라도 먼저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불편한 분위기를 유난히 견디지 못하는 내가 먼저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렇게 upset되어 그 오랜 세월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몰랐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자기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작년 초에 일어난 한 사건이 감사하게도 비로소 그것을 깨우쳐 주었다. 1월 초에 집에 온통 물난리가 났었다. 우리 가족은 모든 짐을 스토리지에 넣고 집주인(교회)이 집을 수리할 때까지 밖에서 살아야 했다. 그렇게 살기 시작한 지 3주 쯤 되었을까? 렌트 보험 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합해서 숙원이던 자동차를 바꾼 주였다. 주말에 아이들을 태우고 400번 몰로 드라이브 겸 쇼핑을 가기로 했다. 출발 직전까지 모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차에 타서 선글래스를 찾았는데 없었다. 트레이드를 한 옛날 차에서 아내가 꺼냈어야 했는데 잊었다고 했다. 그 선글래스로 말하자면, 매우 갖고 싶었었지만 10년 망설이다가 산 레이밴 애비에이터였다. 150여 불짜리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그랬지만 그렇게 망설이다 평생 처음 산 선글래스를 부주의로 잃어버린 아내에게 더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나서 모든 의욕을 잃었다. 몰에 가서도 차 밖에 나가지 않고 아이들과 아내만 잠깐 나가서 꼭 필요한 것만 사가지고 돌아왔다. 물론, 아무도 기분 좋은 사람도 심지어 말한마디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럴 때 화를 풀어줄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화가 났다. 

 

바로 집으로 돌아와서까지 화가 가시지 않았다. 마침 가정예배를 해야 하는 토요일이기도 해서 온 가족을 둘러 앉히고 그 일에 대해 말들을 좀 해 보라고 했다. 그때 한웅이가 울컥울컥하며 말을 시작했다. 한웅이 평생 처음 그런 식으로 하는 말이었다. “아빠 정말 사랑해요. 그런데 아빠 화를 좀 컨트롤하시면 안 되겠어요?” 너무도 뜻밖이었다. 언제나 화를 낼 만하니까 내니 정당하다고 여길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화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니 말이다. 한빛이도 할 말이 있었다. 여리디 여린 한빛이는 말을 하기 전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리집에서 덩치가 제일 큰 사람이 겉잡을 수없이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아빠 싸우면 저는 너무 무서워요.” 나는 너무나 놀랐다. 한빛이는 그런 상황을 싸우는 걸로 받아들이고, 너무 무서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싸우다 혹시 이혼이라도 할까봐 어린 맘에 무서웠던 것같다.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고 미안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나의 그런 모습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속 Tray의 두 아들들 처럼.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불투명한 미래로 upset되는 것을 나도 피할 수 없었던 것같다. Upset되어 있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자극에도 한웅이 말대로 화를 컨트롤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게다. 아무 문제 없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upset되어 있던 내가 아이들과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들에게 그랬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그랬을 것이다. 참 인간의 나약함이라니 ….

 

다음 날 아침, 조지아텍 학생 하나를 라이드 하러 가면서 일부러 한웅이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한웅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에,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고 싶었다. 한웅이는 여전히 긴장한 기색으로 따라 나섰다. 한웅이에게, “아빠의 부족함을 이해해 주고, 잘못을 용서하고, 아빠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했다. 여전히 한웅이는 말이 없었다. 아빠에 대해 그러마고 대답하는 것이 더 이상했을 것이다. 다만, 그 뒤로 내가 설교를 하고 내려올 때 한웅이가 내 어깨를 토닥거려 주기도 하고 잘 했다는 뜻의 말을 해주기도 하기 시작했다. 아빠를 친구처럼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느낀다. 한빛이도 그렇고. 이제 내가 좀 덜 upset되어서일까?

 

불확실한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가장 표현할 수있는 말이 upset인 것 같다. Upset은 따라서 믿음의 부족함의 증거다. 그것을 일깨워 준 한웅이와 한빛이가 고맙다. 그리고, 그런 못난 아빠, 남편을 10년 여 동안이나 참아 준 아이들과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이래서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고전10:13). Upset되지 말고 믿음을 갖기를 바란다.  

 

금주의 설교 페이지로 가기: 긍휼히 여기라 (야고보서 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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