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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22:41

31호--풍이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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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 신비하게 일어나는 일. 모세, 엘리야, 엘리샤 등 구약의 특별한 인물들, 예수님, 그리고 그 사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그런 기적을 행하실까? 자신들의 삶 속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체험했다는 기적도 다양하다.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부터, 불치병이 낳았다는 것, 또 어떤 사람은 지옥과 천국을 갔다 왔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공부도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전날 기도를 오래 했는데 토플 시험에서 거의 만점을 맞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렇게 기적처럼 보이는 일이 생겼다. 어느날 갑자기 풍이 완전히 나은 것이다. 기적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을까?

 

맹목적인 순종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분별력을 얻어가며 그렇게 시간이 가고 있었다. 순종의 이야기 속에 묻혔지만, 나는 여전히 몸이 불편했다. 하지만, 전과 같이 그렇게 예민하지는 않았다. 사업이 다시 궤도에 올라와서이기도 했겠지만, 감각이 무디어져서 였던지, 아니면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것에 대한 생각에서 좀 벗어나게 되어서였던지, 많이 무감각해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아프기는 마찬가지였기에 고칠 수만 있으면 고치려 노력했다. 매주 침을 맞으러 다녔고, 마사지를 받았고, 또 용하다는 의원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마사지들 두 군데서 정기적으로 받았는데, 그것만으로도 한달에 100만원 돈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동시에 나의 믿음에 대한 추구는 점점 더 강해져 갔다. 일단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한글 성경은 읽기가 어려웠다. 단어가 고어로 쓰인데다가, 성경에만 쓰인 일반적이지 않은 단어들이 있어서 사전을 찾아 보아도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요즘과 같이 인터넷에 정보가 많지 않아서 인터넷을 검색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영어 성경이었다. 누나가 대학 때 선물로 사준 NIV와 개역한글 성경이 나란이 되어 있는 한글-영어 병행성경을 보았다. 그 성경에는 약간 어려운 영어 단어가 페이지마다 설명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한글 성경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던 단어들이 제법 많아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 나는 영어를 소리 내어서 읽기를 좋아했는데, 그것도 내가 성경을 더 읽도록 하는 한 이유였다. 그렇게 미국에 신학을 공부하러 올 때까지 성경을 대략 두 번 읽었다. 대략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슨 말인지 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던 요한계시록과, 지루한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시편과 같은 것들은 건너 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이 점점 더 “세련”되어져 갔던 것 같다. 성경의 용어들에도 익숙해져 갔고 교회에서 하는 행위나 행사들의 의미도 조금씩 이해해 나갔다. 나아가서, 설교권을 독점하던 당회장 목사의 설교를 듣다가 자주는 아니었지만 아주 가끔은, ‘저분이 하는 말과 성경이 하는 말이 다른데 …’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이해하지 못하던 때라서, 그것을 문제라고는 인식하지 못했다 (이 점은 나중에 내가 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중요한 이유다). 다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변화는, 설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따라서 설교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설교를 들으면서 중요한 성경구절이나 내용들을 수첩에 적었다. 한국에서 그 교회를 다니던 약 2년 동안 당회장 목사가 어떤 성경구절로 어떤 내용의 설교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예배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으므로, 그 당회장 목사로부터 들은 모든 설교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있는 셈이다.

 

교회를 갈 때에 언제나 비즈니스 정장을 풀로 하고 갔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아둔한 짓이었지만 그때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 불평 없이 그렇게 했다. 자리는 언제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이 우스꽝스러운 일이고, 그런 우스꽝스러운 것을 하라고 강요하는 그런 교회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았을 일인데, 맹목적이고 광신적이던 그 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했다. 그리고 지성전의 담임 목사가 그것을 할 때 카메라에 잘 보이게 맨 앞 줄에 앉으라고 해서 언제나 맨 앞줄에 앉았었다. 그것은, 예배가 시작되어 당회장이 강단에 올라와 지성전들의 이름을 부를 때 두 팔을 높이 올려 만세를 하며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이었다. 각 지성전들이 그것을 할 때 위성을 통해서 다른 지성전들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지성전의 담임목사들은 그걸로 기가 죽거나 살거나 했다. 일종의 충성경쟁이라고 할까? 정말 지금 생각하면,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내가 어린애들 장난같은 노름을 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광신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성숙한 신앙을 찾아 볼 수 있고, 무슨 진리를 찾을 수 있는가? 그런 행위들을 모아서 하는 것을 예배라고 했으니 …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그날도 그렇게 맨 앞에 목이 터지라 “할렐루야” 만세를 부른 후에 통성 기도 시간이 지나고 당회장 목사의 기도가 지나고 설교가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에야 우스꽝스럽고, 광신적이고, 미신적인 예배지만, 그 때는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예배를 드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설교였다. 당회장 목사의 설교는 두서가 잘 갖추어진 논리정연한 설교라는 평이 자자했다. 나는 그렇게 느끼지는 못했지만, 내가 아직 부족해서 설교를 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내탓을 했다. 사람이 무언가에 미치면 판단력이 없어진다. 지금 들어보면 그 목사의 설교는 그리 성경적이지도 심지어 논리정연하지도 않은데, 그때는 그 목사를 맹목적으로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대니까 그냥 그렇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요즘에도 사람들이 “우리 목사님 말씀 좋아요” 해서 호기심에 그 목사들의 설교CD를 갖다 들어보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목사를 “우리” 목사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의 나처럼 자기네 목사니까 말씀이 좋다고 ‘믿어주기로’ 스스로의 뇌를 설득한 경우가 많다. 영어로는 이런 것을 메스머라이징(mesmerizing)이라고 한다. 칼 마르크스가 “종교는 아편”이라고 했을 때 이런 잘 못된 광신적 관행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그날 그렇게 설교를 듣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내 머리에 기름을 잔뜩 부은 것같았다. 끈적끈적한 기름이 머리에서 오른 쪽 빰을 타고 흘러 오른쪽 팔은 물론 가슴과 배까지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이상한 느낌에 내 몸을 흘깃 보았다. 완전 정장을 하고 있었고 어떤 기름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그것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그날 오후 교회에서 늦게까지 봉사를 한 후에 창원 근교에 있는 어느 호수에 바람을 쏘이러 갔다. 유치원에 다니던 한웅이가 신이 났다. 다른 아이들처럼 물가에서 호수에 물을 던지며 놀았다. 나는 한웅이에게 물수제비 뜨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른손잡이니까 물컵도 들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오른쪽 어깨를 써야 했지만, 일단 해 보기로 했다. 처음엔 아팠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덜 아팠다. ‘어 이상하다 … 이렇게 안 아플 리가 없는데 …’ 하며 계속 했다.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 어떤 때 좋은 납작한 작은 돌로 잘 던졌을 때는 무려 다섯번 정도 물수제비가 떠졌다. 한웅이는 물수제비를 보며 더욱 신이 났고 나는 물수제비를 뜰 정도로 돌을 던질 수 있게 되는 내 어깨 때문에 신이났다. 약간 느껴지는 통증을 참고 신나게 돌을 던져댔다. 

 

그날 이후 모든 풍 증상이 점점 약해지더니 일주일이 넘지 않아서 모두 없어졌다. 팔을 뒤로 꺾어올리는 것은 그 후로도 한참동안 힘들었지만 물건을 드는 등 다른 동작들에는 문제가 없어졌다. 다리도 절지 않게 되었고, 오래 걸어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명도 없어졌고 자주 오던 두통도 오지 않았다. 말할 때 입가에 생기던 거품도 사라졌다. 그렇게 풍은 나를 떠났다.

 

기적과 표적을 항상 고대하고 살던 당시에 나는 그것이 당연히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느낌이었고 당회장 목사, 지성전의 담임목사, 전도사, 구역장들 등 나를 위해 기도해 주던 모두가 그 교회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며 야단법석이었다. 나도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그들과 같이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로 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이 어떤 초자연적인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고 의지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정신과 내 육체, 심지어 신경들까지도 움켜 쥐고 있던 그 무엇이 풀렸을 게다. 그래서 결국 이유없이 아프던 몸이 정상으로 풀어져 돌아왔을 게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를 풀리게 한 것이 어떤 육체나 자연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영적인 힘, 즉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면 그것은 초자연적인 것이고 기적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기적이라고 할지라도,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을 행한 것은 설교를 한 당회장 목사도, 하나님을 믿은 나도, 나를 위해 기도한 사람들도 아니고,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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