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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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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o dei.jpg <<좋은 말>> 종교 VS 인격/도덕

교회들과 교인들이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잘 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이것을 바로 잡아서 하나님께서 얻고자 하셨던 참된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려왔던 종교적 전통을 혁파하셨습니다. 그 종교적 전통을 강조하던 가장 영향력이 강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종교적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인격적 도덕적 성숙이라는 본래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습니다. 즉, 그들 스스로 중요하다고 여기던 종교적 율법을 수호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 그리고 사회적 정의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신 것도 아니고 기뻐하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늘 사랑을 원하셨고 또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엄중히 꾸짖으시고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예: 마태복음9:13, 23장). 그들의 전통을 부정하고, 그들의 잘못을 비판하며, 나아가서 진리를 가르침으로써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들의 전통의 잣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급기야 처참하게 죽이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예수님과 제자들에 대한 핍박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바리새인의 후손들로서, 수많은 우매한 사람들이 그들의 속임수에 속아 놀이개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속임수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핵심은 종교적 계명이 있지 않고, 인격적 도덕적 성숙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 본래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음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맞는 말일까요?>>

“크리스챤은 예수님이 그 죄값을 이미 대신 치르셨으므로  그 후에 또 다시 죄를 지어도 죄값을 치르지 않는다.”

 

전혀 옳지 않은 말입니다.

 

이것이 마치 성경이 말하는 것인 양 가르치는 교회들이 많고, 그 결과 소위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싸이코 패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의 가장 교묘한 거짓말입니다. 성경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두 가지 측면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상식적 논리적으로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전에 지은 죄값을 대신해서 돌아가심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과 다시 화평케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게 했다면, 다시는 죄로 돌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번 용서를 받았으니, 이제 같은 죄를 지어도 책임질 죄값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이는 부모에게 잘못을 빌어서 용서를 받은 아이가 용서받았으니 이제는 잘못을 얼마든지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어불성설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자는 다시 속죄할 제사가 없다”고 합니다 (히브리서10:26). 그들의 이론은 한번 ‘받은 구원은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Once saved forever saved)’는 유행어와 같은 말로써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그 말의 주장자들이 제시하는 것은 성경의 왜곡에 불과합니다. 예를들면, 그들은 요한1서 1장 7절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피가 어떤 죄값도 다 씻어 주신다고 하는데, "우리도 빛가운데 행하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 전제를 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왜곡에 불과합니다.

 

<<칼럼>> 영들을 분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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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씨디를 들으신 분이 연락을 해왔다. 사우쓰 캐롤라이나의 어느 시골에 40년 넘께 살고 계시는 분인데, 그곳에 있는 작은 한인 마켓에서 내가 2년 전에 베포했던 설교 씨디를 우연히 얻게 되었단다. 주한 미군과 결혼을 통해 미국에 오신 70대 초반의 노인이다. 한국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시골에서 제한적인 영어로 오랜 세월을 살다보니, 언어 때문에나, 좁아진 시각 때문에나 대화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첫날은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통화를 하고 다음 날 시간을 내어 다시 통화를 했다. 여러가지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셨다. 그 많은 얘기들을 듣노라니, 너무도 안쓰럽고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그분이 사시는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아내가 김치를 담그고 쌀 한 포데를 사서 3시간 반 길을 소풍 삼아 떠났다. 만나서 함께 한 서너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요한일서 4장 1절의 말씀이다. 그 자매님과 대화를 하면서 머릿속에 계속 맴돈 말씀이기도 하고, 한국분들과 만나서 교회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말씀이다. 왜 그 말씀이 자꾸 떠오르게 되는지 말해 보려고 한다.

 

어느 외롭고 가난한 자매님
그 자매님은 소셜 연금과 30년 전에 헤어져 따로 사는 남편이 보내는 생활비, alimony를 받아서 사는 분이다. 어쨌든 사회보장을 가지고 사는 가난한 노인임에는 변함없다. 설교 씨디를 통해서 작년 8월 아틀란타에 소재한 어떤 개척 교회를 알게 되었다. 그 자매님은 자신의 생활비를 아껴서 모은 얼마 간의 돈을 그 교회에 도네이션 하고 싶었다. 수표를 쓰지 못하는 관계로 그 목사에게 직접 와서 가져가라고 부탁을 했다. 그 목사가 다음날 와서 점심 대접을 받고 기름값과 함께 수표를 받아 갔단다. 그렇게 그 목사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자매는 그 목사와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전화를 통해서 대화를 원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전화를 할 때마다 목사는 바쁘다며 그 자매의 말은 들어주지 않고 바로 바로 전화를 끊었다. 아프리카 선교를 갔다왔다, 중국 선교를 갔다왔다 하면서 최근 들어서는 전화도 안 받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목사는 자신의 사적인 얘기를 그 자매에게 많이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들어보니, 온통 어려워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 뿐이었다. 심지어 자기 5남매가 미국에 와서 사는데 형님도 어렵고 여동생도 어렵고 … 자기도 어려워서 미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 중국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당장 만여 불이 필요하다고 한단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그 ‘주의 종’을 돕지 못하는 자매는 밤잠을 설쳤단다. 몇 일 전 만여 불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는 몇 일 째 잠을 편히 못자고 아침마다 눈물로 기도를 올리고 있단다.  그 자매님은 우리에게 그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그 목사를 도와주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까지 하며 안타까워 했다. 

 

어느 목사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같은 목사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고 있는 내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화끈거렸다. 목사라는 작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정말 화가 치밀어 올라서 퉁탕거리며 뛰는 내 가슴을 진정시킬 길이 없었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있을까? 더군다나 ‘목사’라는 호칭으로 불리우면서 말이다. 정말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임에 분명하다.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하나님의 진노가 무서워, 어찌 그런 인두겁을 쓴 짓을 할 것인가? 그 자매가 언급해서 그 목사의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데, 확 밝혀서 다시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정말이지, ‘벼룩이 간을 내먹는다,’ ‘문둥이 XXX에서 대추 빼먹는다’는 속담을 방불케 하는 자가 아닌가? 아무리 한국 교회가 타락했다고 하지만, 목사라고 하는 자들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니 정말 한심하다.

 

그 목사는 올해 61세란다. 목회 외에 나름 경제활동을 하고 있단다. 부인도 건강해서 일을 하고 있고, 자녀 둘은 잘 키워서 좋은 잡을 갖고 산다고 자랑도 한단다. 그 자매는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 국민학교를 입학만 하고 졸업도 못하고, 제대로 사회생활도 해보지 못한 70대 초반의 정말 가진 것 없는 외로운 촌부다. 미국의 복지 시스템과 오래 전에 헤어진 남편의 도움에 맞추어 살고 있다. 알다시피, 복지 연금은 최저 생활비 정도다. 그래서, 연금만으로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헌금 얘기를 꺼내는 것은 실례다. 연금만으로 최저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 분들은 오히려 도움의 대상이지 헌금을 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인구가 아니다. 그런 연금 수급자인 70대의 시골 노인에게, 최근에 산 수십만불짜리 집 페이먼트가 어렵다고 말하고, 교회 렌트비 걱정을 말하고, 중국 등 해외 선교비를 말하고, 심지어 이제는 중국으로 이주하는 데 만여 불이 급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잡한 구걸이고 추악한 갈취행위다. 그런 짓을 하는 자를 ‘주의 종’이라고 부르고, 그런 돈을 받아서 그가 하려고 하는 일을 ‘복음사역’이라고 할 수 없다. 창녀의 화대를 가져오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그런 추잡하고 추악한 돈을 받으시겠는가 (신명기23:18)?

 

사람들에게 앓는 소리를 하는 사람을 Poor Mouth라고 부르는데,

누구나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예수님께서도 밝히 말씀하시기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고 하셨다 (마태복음6:33). 사도 바울도 분명히 가르치기를, 복음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리라고 했다 (고린도전서9:14). 그 목사처럼 사람들에게 앓는 소리를 하는 사람을 두고 미국 사람들은 Poor Mouth라고 부르는데, 미국인들이 가장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거지근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로 싫어한다. 그런데, 가장 부자이시고,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자가 왜 그런 거지근성을 갖고 있는가? 도대체, 사회 복지로 사는 가난한 촌부에게서 뜯어낼 것이 뭐가 있다고 그런 추잡하고 추악한 짓거리를 하는가? 성경은 오히려 과부와 고아를 돌아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야고보서2:6, 15-16)?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유대인이 아니다.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고 표면적 유대인은 참 유대인이 아니듯이, 목사라고 다 주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이면적 목사가 참된 주의 종이고, 세상의 욕심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하며 결국 주님의 복음 사역에 찬물을 끼얹는 표면적 목사는 주의 종이 아니라 사탄의 종이다 (로마서2:28-29). 영을 분별해야 한다! 성도든, 장로든, 권사든, 사모든, 목사든, 누구든,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인지, 물신숭배의 사탄의 영을 가진 자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물신의 노예가 되어 사는 자가 목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고 해서 목사가 아니다. 돈만을 밝히는 자가 장로의 타이틀을 달고 있다고 해서 장로가 아니다. 권사도 사모도 성도도 마찬가지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선하게 의롭게 사는 자들이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성도도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아예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성경이 그렇게 힘주어 가르치지 않는가 (로마서8:9)? 눈있는 자들은 읽고 귀있는 자들은 들으라! 

 

영을 분별하라
진정으로 구원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들이 사탄의 종에게 돈을 바치건, 맘을 바치건, 심지어 몸을 바치건 그건 그들의 저주받은 선택이다. 그러나, 정말 구원을 원하고 바란다면, 제발 영을 분별하라. 목사라고, 장로라고, 권사라고, 사모라고, 혹은 성도라고 스스로 말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다 믿지 말고, 그들의 삶을 보고 그들이 무슨 영으로 사는 자들인지를 분별하라. 그들의 매일 매일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는 영으로 사는 삶인지 아니면 물질과, 세상의 이익과, 세상에서의 안락과 출세를 주인으로 모시는 세상의 권세잡은 자의 영의 노예로 사는 자들인지를 분별하라. 구원을 원하는 분들은, “평생을 배워도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와 같이 되지 말라 (디모데후서3:6-7). 감언이설을 일삼는 거짓 목사에게 꾀임을 당해 영혼과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말못할 상처만 뒤집어 쓰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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